엄마는 언제나 습지를 탐험해 보라고 독려하며 말했다.
"갈 수 있는 한 멀리까지 가봐. 저 멀리 가재가 노래하는 곳까지."
"그냥 저 숲 속 깊은 곳, 야생동물이 야생동물답게 살고 있는 곳을 말하는 거야."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 세상으로부터 도망쳐온 사람들이 터전을 삼고 살아가는 노스 캐롤라이나의 습지 깊숙한 곳 - 그 속에 "마시 걸(Marsh Girl: 습지소녀)"이라고 불리는 한 소녀가 있습니다. 6살 때, 그녀의 학대받던 엄마, 언니, 오빠들이 집을 떠나고, 술주정뱅이이지만 유일한 어른이었던 아버지마저 떠나고 난 후, 이 소녀 "카야"는 사회로부터 거의 완전히 고립된 채... 습지의 바람, 파도, 구름, 갈매기들과 수없이 많은 생명체들을 스승 삼아 자연의 일부인 듯 살아갑니다.
(이 후 약간의 스포일러 있습니다. 원하지 않으시면 여기서 그만 읽어주세요~)
그야말로 "격리가 내 인생이었다"라고 말하는 카야에게 그나마 인간관계를 제공해 준 사람들은, 그녀에게 여분의 옷을 제공하고 휘발유를 팔고, 그녀가 잡아온 홍합과 물고기를 사주었던 "유색인종" 점핑 아저씨 부부와 그녀에게 글을 알려주고, 지식의 세계로의 문을 열어준 첫사랑의 상대였던 테이트 워커 밖에 없었습니다. 그녀에게 그 외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을 멸시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뿐이지요.
어린 딸을 버리고 다시 찾지 않은 엄마를 이해하기 위해 끝없이 생물에 관한 책을 탐독하고 습지를 탐험하던 이 소녀는 결국 그 집요함의 결과로 습지 생태학 책의 저자가 되지만, 그녀를 향한 세상의 편견은 그녀의 인생을 또 다른 문제의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게 됩니다.
야생동물 관찰에 의거한 세 권의 논픽션 작품으로 인지도를 높인 저자 Delia Owens는, 노년에 장편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발표하고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이 소설은 인간관계가 단절된 채 버려져 홀로 성장하게 된 주인공 카야의 성장기이지만 동시에, 문명이라는 가면을 쓰고도 여전히 적자생존의 혹독한 생존법칙을 그 속에 감추고 있는 인간사회의 잔혹함에 대한 보고서이고, 미스터리이자 법정 드라마이며, 슬프고 잔인한 사랑이야기입니다.
어린 나이에 가족이 하나 둘 자신의 곁을 떠나는 것을 경험한 카야는 누군가 곁에 남아있어 줄 것을 끝없이 갈망하지만 또 그 때문에 엄청난 상처를 입습니다. 결국 누구도 자신 곁에 남지 않는 상황 속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법을 알았다고 말하는 그녀는 인생의 가장 어려운 순간, 자신만의 기지와 의지에 기대어 살아남지요.
책 전체에 걸쳐서 지속적인 어려움으로 점철된 그녀의 인생 중, 그녀가 가장 힘겨워하는 순간이 감옥에 갇혀 습지와 격리된 순간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평생을 노스 캐롤라이나의 습지에서 홀로 살아온 그녀는 자연이 낳은 "땅과 물의 생명체"이고, 습지 깊숙한 어두운 비원이야말로 그녀에게는 스스로에게 진실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던 것이지요.
다행히 인생의 후반을 함께할 반려와 가족을 찾게 되는 카야... 하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결국 그녀의 온전한 모습을 알고 있었던 것은 "가재가 노래하는" 저 숲 속 깊은 그 곳 뿐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저만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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