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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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누군가의 생각들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by Ms. Sue 2024.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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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하지 않을 거다.
이승에서 가장 끔찍한 것을 본 사람처럼
꿈쩍거리는 노인의 두 눈을
너는 마주 본다.
아무것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의 광주를 배경으로 죽은 자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의 상처를 그리고 있는 한강 작가의 장편소설입니다. 여섯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각 장마다 서로 다른 화자가 각자의 자리에서 겪어내었던 광주 민주화 운동을 이야기하고 있지요.
 
1장에서 ‘너’라는 2인칭으로 지칭되는 동호는 죽음에서 도망쳐 살아남은 소년이며, 친구 정대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친구를 찾다가 상무관에서 시신의 수습을 돕게 된 동호에게 손녀의 시신을 본 한 노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도 용서하지 않을 거다. 나 자신까지도.” 그리고, 바로 그 날, 군대가 들이닥칠 것을 알면서도 도망치지 않고 동호는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2장은 혼이 된 ‘나,’ 동호가 찾아다니던 친구인 정대가 주인공이지요. 자신과 다른 이들의 시체를 따라가며, 제 누나와 동호가 죽었음을 감지하고, 마침내 자신의 시체가 타버리면서 자유롭게 하늘로 날아갑니다.
 
3, 4, 5장은 동호와 함께 상무관에서 시체를 수습하던 은숙과 선주, 그리고 진수의 광주항쟁 이후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살아남은 자신을 원망하며 살아가는 은숙은 부정한 내용의 희곡 출판을 도왔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7대의 따귀를 맞고, 고문으로 하혈하는 선주는 5.18 관련 인터뷰 요청을 차마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진수는 감옥에서 총기소지의 이유로 심한 고문을 받다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된 후 결국 자살하지요.
 
그리고 마지막 장인 6장은 동호를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동호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은 5.18 광주항쟁에서 살아남은, 그리고 살아남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가장 어린 두 소년, 동호와 정대는 결국 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목숨을 잃고, 상대적으로 어른들이었던 살아남은 이들은 죽지 못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더 이상 어두워지지도, 다시 밝아지지도 않는 저녁 속에서…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잠을" 잡니다.
 
사실, 광주의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정치적 폭력과 항거, 복권의 이야기로 그린 많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이 더 마음에 와닿는 것은 작가가 독자로 하여금 그 사건과 그 시절을 다양한 화자의 입장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선량한 사람들이었고, 평범한 삶을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방에서 시취가 연기처럼 피어오르던 그 해의 5월은 그들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인간적 존엄성과, 인생 자체를 파괴해 버립니다.
 
아마도 이 소설이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여전히 보편적인 인간의 이야기로 읽힐 수 있는 것은, 정치가 아닌 인간의 삶을 중심에 두고 있는 작가의 시선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읽기에 고통스러울 정도로 명징한 작가의 언어는 가장 잔인한 사건의 뒷모습을 담담히 따라가는 기록이자 스러져간 이들에게 바치는 장송곡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한 가지 명확하게 느껴지는 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평생 그 죽은 이들에 대한 죄책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입니다. 그리고 그 슬픔은 바로 아직 파괴되지 않고 남아있는 그들의 인간적 존엄성일 것이겠지요.
 
이 소설의 영문 번역판 제목은 "Human Acts"입니다. 생존을 위해 도망가던 행동도, 끝까지 도망가지 못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행동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 후에 다시 일상을 살아나가는 행동도, 또 그 죽음들을 초래한 무자비하고 파괴적인 행동도 모두 인간이기에 가능한 행동일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Human Acts"라는 제목은 소위 "비인간적인 행위"까지도 포함하는 "인간의 행위"로도, "Divine Acts(신적인 행위)"의 반대편에 자리 잡고 있는 "인간의 행위"로도 읽힐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소년이 온다.... 불행한 역사적 비극 속에서 미래를 잃은, 그저 소년이었던 그가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무엇이 달라졌느냐고, 어떻게 살고 있느냐고. 그의 질문에 우리는 답을 할 수 있을까요? 이 책을 덮으며 마지막으로 들었던 생각입니다.
 
 
* 위 글은 4,5년 전 한 강 작가님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썼던 리뷰를 재구성한 글입니다. 읽기 너무 힘들었고, 그 만큼 오랜 여운을 남겼던 책이었던 만큼, 작가님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은 반가왔습니다. 한강 작가님, 노벨상 수상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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