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진이라는 젊은 가수의 노래 중에 "Episode"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던 중, 제대로 녹음된 버전이 아니라 가수가 기타 한 대로 흥얼거리듯 노래하는 버전으로 처음 듣게 되었지요. 반주가 단순해서였을까요? 잔잔히 이야기하듯 펼쳐지는 가사가 살짝은 가슬가슬한 가수의 목소리에 실려 명료하게 들리더라고요.
우리의 에피소드가 찬란하게 막을 연다
배경은 너의 집 앞, 첫 데이트가 끝난
둘만의 에피소드가 참 예쁜 얘기로 시작
자작자작, 조심스런 대화, 그새 늦은 시간
-이무진 "에피소드"
"Episode"라는 제목은 우리가 외래어로 일상 중에 많이 사용하는 영어로, 우리말에 섞여 사용될 때는 주로 "일화, 재미있는 짧은 이야기"정도의 뜻으로 사용되지요. 하지만, 이 뜻은 단어의 가장 일반적인 뜻은 아닙니다. Oxford 영어 사전에 의하면 원래의 뜻은 "일련의 사건의 일부인 하나의 사건 또는 몇 개의 사건 / 독립된 사건이나 기간"으로 되어 있지요. 혹은 "시리즈 물로 제작된 TV나 라디오 프로그램, 혹은 연작인 글에서의 한 회"를 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예를 들어 요즘 Netflix에 있는 많은 시리즈 물들이 모두 episode 1, 2, 3... 이런 식으로 넘버링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episode"라는 단어는 그리스 어에 그 기원을 둔 것으로 보입니다. "이야기의 일부"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epeisodion"이라는 그리스어에서 온 이 단어는 다시 "~위에, ~옆에"를 뜻하는 "epi"라는 접두어와 "입구, 진입"을 뜻하는 "(ei) sod"로 나눠질 수 있습니다. 즉 "~옆에 삽입된 이야기"를 뜻하게 되는 것이지요.
단어를 이루는 각각의 부분은 다시 여러 개의 다른 단어들에서 그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요.
우선, "~위에/옆에"라는 뜻을 가진 "epi"는 "사람들"을 뜻하는 "dem(o)"와 합쳐져서 "epidemic(전염병)"이라는 단어가 되고, "자르다"라는 뜻을 가진 "tom"과 합쳐져서 "epitome(전형, 요약)"이라는 뜻이 되네요. 또, "무덤"이라는 뜻을 가진 어근 "taph"와 합쳐져서 "epitaph(묘비명)"이라는 단어가 "피부"라는 뜻을 가진 "derm"과 합쳐져서 "epidermis(표피)"가 됩니다. 또, "나타나다"라는 뜻을 가진 "phan"과 합쳐져서 "epiphany(직관, 깨달음)"가 되네요.
사실 "epi"는 접두어이다 보니 이 접두어를 공유하는 단어들의 의미 간 연속성은 별로 눈에 띄지 않습니다만 "episode"의 어근인 "(ei)sod / odus / hod"를 공유하는 단어들 간의 연속성은 보다 두드러집니다. "밖"을 뜻하는 "exo"라는 접두어와 합쳐져서 성경의 출애굽기(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는 이야기) 혹은 대탈출을 의미하는 "exodus"라는 단어를 이루고, "함께, 이후"를 뜻하는 "meta"라는 접두어와 결합되어 방법을 뜻하는 "method"를 만듭니다. "위"를 뜻하는 "an"과 합쳐져서 "anode(양극)"을 반대로 "아래"를 뜻하는 "cath"와 합쳐져서는 "cathode(음극)"이라는 뜻을 나타내게 되네요. "주위에"를 뜻하는 "peri"라는 단어와 합쳐지면, 기간, 주기 등을 뜻하는 "period"를 형성합니다. 전체적으로 이 어근을 공유하는 단어들은 대부분 어떤 방향, 길, 나아감을 뜻하게 되지요.
다시 노래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조금은 밝은 분위기, 느리지 않은 박자에 어찌 들으면 풋풋하고 찬란한 사랑 노래 같은 이 노래는, 실은 이미 지난 챕터로 넘어가버린 끝나버린 사랑에 대한 궁상맞은 후회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긴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짤막한 단상 같은 이 사랑 이야기의 끝에 "epi"라는 접두어를 가진 다른 하나의 단어가 등장합니다. "말, 단어"를 뜻하는 "log(ue)"와 합쳐서 이루어진 "epilogue"라는 단어가 그것입니다.
굿바이, 너무 아픈 이별의 굿바이
눈물이 뺨을 스쳐 도착한 입가엔 미소
애써 웃고 있어, 우린 서로를 보며
첨 같던 미소로 안녕, 웃으며 안녕
눈 뜨면 에필로그다, 침대에 기대어 혼자
펑펑 울고 있는 나, 이 궁상 밖의 난
둘만의 에피소드완 전혀 다른 모습, 난 그날
돌아서지 말았어야 했다, 널 안았어야 했다
그 밤, 눈꽃이 널 덮은 그 밤의 향을 잊음과
함께 잃었던 따스함, 춥게 눈을 뜬다
겨울밤이 되어서 맞이한 향이
우리의 에피소드다
"Epilogue"는 본편에서 다 설명되지 않은 뒷이야기를 짧게 덧붙이는 후일담입니다. 이 사랑의 후일담은 춥고, 궁상맞지만...젊은만큼 솔직하고 돌려 말하지 않네요. 더 이상 현재진행형이 아닌 "episode"에 대한 이 허세 부리지 않는 후회가 그만큼 더 성숙한 사랑의 새 장을 맞을 준비가 되기를, 그래서, 이 "Epilogue"가 다음 사랑의 "Prologue(서문)"가 될 수 있기를 사랑을 잃고 펑펑 우는 그에게 말해주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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