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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어원 에세이

[어원 에세이] Clinomania

by Ms. Sue 2024. 6. 23.

 

요즘 주말이면 좀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어디선가 봤던 이 단어가 생각나더군요 - Clinomania... 우리 말로는 번역조차 어려운 이 단어는 "excessive desire to stay in bed" 즉 "침대에 계속 머무르고 싶은 엄청난 욕구"를 의미합니다. "잠들지 않는 나라"인 한국에서, 24시간 쉼 없이 돌아가고 있는 인터넷과 social media의 영향 하에 있는 우리들에게는 어쩌면 달콤하게 들리는 욕망일 수도 있겠지요.

 

그리스어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이 단어는 "기울기, 기울어진" 혹은 "침대"의 뜻을 가지고 있는 "clino"와 "조증, 무언가에 대한 열광 혹은 열광하는 행위"를 뜻하는 "mania"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clino"를 어원으로 가지고 있는 단어들은 주로 "~을 향해 기울어진, 편향된" 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흔한 단어로는 "incline/inclined/inclination(기울다/~하는 경향이 있는/경향)"이 있지요. 그 외에도 "decline(감소하다, 거절하다)" "recline(기대다)" "proclivity(경향)" 등의 단어들이 있는데, 대부분 문자 그대로 혹은 비유적으로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짐을 뜻하고 있습니다. 

 

"climate(기후)"도 "cline/cline"에 그 어원을 두고 있는 단어 중 하나인데요. 기울어져 있는 지구의 자전축이 계절 변화의 원인이라는 점에서 착안하여 만들어진 단어라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상당히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는 셈이죠. 이와 함께 "climatology(기후학)" "climatize(적응시키다)" "acclimate(적응하다)" 등도 관련하여 파생된 단어들입니다.

 

"clinomania"라는 단어의 뒷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mania"라는 단어는 현대 영어에서 단독 단어로도 사용되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주로 사용되지만, 사실 "mania"는 사람이 아니라 무언가에 미쳐서 집착하는 상태, 행동을 의미하며,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의 의미로 사용할 때는 "maniac"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mania"의 기원에 대한 가설은 3세기때의 이란의 고유 종교였던 "마니교"에서 왔다는 설과, 그리스 신화에서 술과 방종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섬기던 여성신도를 일컫는 말인  "Mainades"에서 왔다는 설이 있습니다.  둘 중 어떤 경우라고 해도 광적인 맹신의 상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겠지요. 

 

영어에서 "mania"를 그 일부로 포함하고 있는 단어들은 대부분 신경정신학적인 비정상 상태를 가리키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로 "~광"의 형태로 번역될 수 있는 이런 단어들에는, "도둑"을 뜻하는 "klepto"와 결합된 "kleptomania(도벽)," "불"을 뜻하는 "pyro"와 결합된 "pyromania(방화광), " "거대한"을 뜻하는 "megalo"와 결합되어 "megalomania(과대망상증), " "책"을 뜻하는 "biblio"와 결합되어 "bibliomania(장서광)" 등의 단어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분석을 해 놓고 보니, 오늘의 단어는 상당히 모순적인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가 되네요. 침대에 누워 있는 행위만큼 수동적인 행위가 없을진대, 그 상태에 광적일 만큼 적극적으로 집착한다는 뜻이 되니까요. 하지만, 인간은 정말 온갖 것에 집착할 수 있다는 것을 떠올려 보면, 이것도 과히 이상한 상태는 아니지요.

 

스스로를 야행성인 "Night owl"이라고 주장하는 우리들조차도 늘 자기 전에는 미라클 모닝을 꿈꾸지만, 아침에 상쾌하게 침대를 박차고 나가는 일은 정말 결심만큼 쉽진 않습니다. 미국의 시인인 Ogden Nash가 말한 것 처럼요.  

The bed is a bundle of paradoxes:
we go to it with reluctance, yet we quit it with regret;
we make up our minds every night to leave it early,
but we make up our bodies every morning to keep it late.
침대는 역설 덩어리이다:
우리는 마지못해 침대로 가지만, 후회하며 침대를 벗어나고;
매일 밤 일찍 침대를 떠날 결심을 하지만,
매일 아침 그 시간을 늦추려 애를 쓴다.

-Ogden Nash

 

 

하지만, 주의하세요.  그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아, 오늘 하루 땡땡이 치고 싶다."라는 심정의 연장선상으로 보기에는 이 단어가 나타내는 증상은 좀 더 심리적으로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정신적 고통의 발현입니다. 세상과 마주할 용기가 없거나 에너지가 없을 때, 우리는 안전하고 편안해 보이는 침대에 눌러앉아 있는 상태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 이상 자의로는 침대를 떠날 수 없는 상태가 될 때, 우리는 clinomania의 상태가 되는 것이니까요.

 

내가 오늘 이 침대에 폭 파묻혀 세상을 외면할 수는 있어도, 언제까지나 그럴 수는 없다는 것. 내가 너무 오래 침대에 머무르는 것 같을 때, 한번쯤 해 봐야 하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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