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 님의 「인문학 산책」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말과 글에는 사람의 됨됨이가 서려 있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에 사람의 품성이 드러난다.
말은 품성이다.
품성이 말하고 품성이 듣는 것이다.
입 "구(口)"자가 세 개 모여 이루어지는 격과 수준을 의미하는 한자 "품(品)"자는, 말이 쌓이고 쌓여 그 사람의 품성과 품격을 이루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지요. 그렇다면 영어에서 "품 (品) "을 의미하는 단어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품"의 의미를 "사람 된 바탕과 타고난 성품"을 뜻하는 것으로 본다면, "character" 또는 "dignity"가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고, 좀더 "품위"의 의미에 가까운 단어로는 "grace"와 "class"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중, "character"는 타고난, 본질적인 성품을 나타내는 뜻이 좀더 강한 단어이고, "dignity"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나타냅니다. "grace"는 어떤 상황이건 품위있고, 우아하게 처리해 갈 수 있는 태도를 "class"는 수준 높은, 격을 갖춘 태도 등을 가리킬 때 많이 쓰이지요.
이 중에서 우리 말의 "품격, 품성"에 가장 가까운 뜻의 단어를 고르라면, 아마도 "dignity"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Oxford 사전에 따르면 dignity는 "the state or quality of being worthy of honor or respect(명예와 존중을 받을 가치가 있는 상태 혹은 성품)"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위키피디아에 나오는 dignity의 정의인 "the right of a person to be valued and respected for their own sake, and to be treated ethically( 모든 인간이 인간이기 때문에 가치를 인정받고, 존중받고, 윤리적으로 대해져야 하는 권리)"의 의미로도 자주 사용되지요.
"dignity"의 어원을 살펴보면, "가치있는, 적절한"을 뜻하는 라틴어 "dignus"가 직접적인 어원이고, 좀더 과거로 그 흔적을 쫓아보면, 고대 인도유럽어의 "dek-(받다, 수용하다)"에서 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dignus"라는 같은 어원을 공유하고 있는 단어들로는 "고위인사, 고관"을 뜻하는 "dignatary"가 있고, "함께"라는 뜻을 가진 접두어 "con"과 합쳐져서, "적절한, 당연한"의 뜻을 가진 "condign"을 이루게 됩니다. 부정을 뜻하는 "in"과 합쳐지면, "분개한(품위를 잃은)"의 뜻을 가진 "indignant" 와 "모욕"의 뜻을 가진 "indignance"로, 마찬가지로 부정을 뜻하는 "dis"와 합쳐져서 "disdain(업신여기다)"이라는 단어를 이루게 되지요.
이야기를 접으며 "dignity"라는 단어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dignity"의 의미는 앞에서 살펴본 두가지 정의의 교점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즉 모든 인간이 당연히 가져야할 권리인 존중받을 권리를 존중하는 태도인 것이지요. 나와 남의 인간 존엄성을 모두 존중하는 태도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예의이자 최선의 예의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이런 점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dignity에 대해 한 말은 큰 울림을 가지고 있습니다.
Human dignity is the same for all human beings:
when I trample on the dignity of another, I am trampling on my own.
인간의 존엄성은 모든 인간에게 똑같다;
내가 남의 존엄성을 짓밟을 때, 나는 나 자신의 존엄성을 짓밟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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