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오감 중에 후각은 가장 원초적인 감각입니다.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신생아들도 예민한 후각을 가지고 있지요. 또한 후각은 피할 수 없는 감각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코를 막아도 우리가 원하지 않는 냄새로부터 오래 피해있기는 어렵습니다. 결국은 숨을 쉬어야 하니까요. 최근 이 후각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우리나라의 향 문화는 상당한 발전을 보이고 있습니다. 향수, 방향제, 디오도런트, 인센스에 이르기까지 향을 중심으로 하는 많은 상품들이 시장에 나와 있지요.
이런 후각 관련 문화의 대두와 관련이 있을까요? 현재, 호림 아트 센터에서 "향, 푸른 연기 피어오르니"라는 우리 역사 속에 스며있는 향기 문화에 관한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주로 고려시대, 조선시대 때 종교적 혹은 개인적으로 사용된 향에 관한 기록과 관련 용품들에 관한 전시이지요. 우리의 역사 속에 향이 상당히 오랫동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오고 있음을 보여 주는 흥미로운 전시였지요.
"향(香)"이라는 단어를 가만히 보면 "벼 화(禾)"자가 "솥(臼)" 위에 올려져 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습니다. 즉 동양문화에선 곡식이 솥에서 익어가는 구수한 냄새가 향기로운 냄새의 기준이었던 것이지요.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향기로운 꽃이나 허브등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근원지인 셈이죠.
그렇다면 영어의 향기를 뜻하는 단어들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영어에는 향과 관련된 단어들이 제법 있습니다. 특히 좋은 향과 관련 있는 단어로는 fragrance, aroma, scent, redolence, insence, perfume 등이 있지요.
"fragrance"는 라틴어로 "달콤한 냄새가 나다"를 뜻하는 말인 "fragrare"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이 단어와 같은 어원을 공유하고 있는 단어는 fragrance의 파생어인 fragrant, fragrantly, fragrancy 등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향을 뜻하는 "aroma"는 그리스어에서 "향신료, 달콤한 향이 나는 허브"를 뜻하던 "aroma"가 그대로 전해진 경우입니다. "fragrance"와 마찬가지로 거의 직접적으로 연결된 단어들인 aromatic, aromatize, aromatherapy(향기 치료) 등의 단어에서 같은 근원을 찾아볼 수 있지요. "향기, 방향"을 뜻하는 "redolence"는 라틴어에서 "냄새를 내뿜다"를 뜻하는 단어인 "redolentia"가 고대 프랑스어인 "달콤한 향, 향기"를 뜻하는 "redolence"가 되었다가 그대로 영어에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향기, 냄새가 남긴 흔적"을 뜻하는 단어인 "scent"는 "느끼다, 오감으로 감지하다"를 뜻하는 라틴어인 "sentire"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sentire"를 어근으로 하는 단어는 상당히 다양한데요. "감각, 감지하다"를 뜻하는 "sense"에 근원을 두고 있는 sensitive(예민한), sensible(분별 있는), insensible(무감각한), nonsense(헛소리), sensation(감각), sensitivity(감수성), sentient(지각 있는), resentment(분노) 등의 단어들이 있고요. "동의"를 뜻하는 assent, consent, consensus, "반대"를 뜻하는 dissent도 그 근간을 같이 하고 있는 단어들입니다.
향기와 관련된 물건을 뜻하는 단어들인 "향"의 "incense"와 "향수"인 "perfume"은 불을 붙이는 행위와 관련이 있네요.
"incence"는 라틴어로 "불에 태운 것"을 의미하는 "incensum"이라는 어근을 가지고 있고, 그 자체로 "격분시키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방화의, 선동적인" 의 뜻을 가지는 단어인 "incendiary"가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perfume"은 "forward, through"를 뜻하는 접두어인 "per"에 "연기내다"의 뜻을 가지는 라틴어 어근인 "fumare"가 결합된 단어로, "연기"라는 뜻의 "fume, " "훈증하다, 소독하다"의 뜻을 가진 "fumigate, " "증발시키다"의 뜻을 가진 "effume, " 과 "연기를 제거하다"의 뜻을 가진 "defume" 등과 어원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향의 역사는 인류의 의례 문화와 거의 그 시작을 같이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향기로운 풀과 나무를 가져다가 연기를 내면서 신과 대자연 앞에 정갈한 정신과 몸으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의식의 도구로 시작된 향의 문화. 아직도, 우리의 제례, 차례 등은 모두 향을 피워 그 시작을 알리게 됩니다. 곧게 위를 향해 올라가는 그 푸른 연기는 어쩌면 우리의 염원을 저 위 어딘가에 전달해 주는 메신저 같은 것일 수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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